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요하네스 뵐터 (문단 편집) ==== 제2차세계대전 당시의 활약 ==== 폴란드 전역 초기에 그는 제2기갑사단 제1기갑연대 제8기갑중대 소대장(Zugführer)으로 배치되었다. 1941년 10월 14일, 뵐터는 야전에서 부상을 입었다. 야전 병원에서 퇴원한 후 그는 에르푸르트에 있는 제1기갑연대의 임시 예비 중대(Genesendenkompanie)에 소대장으로 배치되었다. 1942년 4월 18일 그는 제1기갑연대 소속 예비 중대(Verfügungskompanie)에 배치되었고 에르푸르트의 생도 훈련 과정에서 소대장으로 참여했다. [[6호 전차 티거]] [[중전차대대]]를 설치하기 위해 자원 봉사자가 필요했을 때 뵐터는 자원했다. 1942년 12월 3일 그는 제502중전차대대로 옮겨졌다. 이전의 성공으로 인해 그는 이 중전차부대에서 1중대 소대장의 직책을 맡았다. 뵐터가 복무한 제502중전차대대로 말할 것 같으면, 1942년 5월 25일 창설, 최초로 티거를 지급받은 부대로 중전차대대 중 가장 화려한 전과를 만들어냈으며[* 종전까지 105~107대의 티거, 8대의 [[티거 II]]를 지급받고 1400대의 전차와 2000문의 화포를 격파. 전투손실 교환비는 18:1정도.] 1942년 8월 레닌그라드 전선에서 데뷔전을 치렀다. 다른 전차 에이스인 [[오토 카리우스]], [[알베르트 케르셔]]가 복무했던 부대로도 유명하다. 북부집단군에 배속되어 주로 북해 해안선을 따라 싸웠으며 일부 중대는 우크라이나 북부에서 싸웠고 동부전선이 다 털리는 상황에서도 북부전선을 지켜내는데 크게 기여한다. 소련군은 레닌그라드, 나르바 등의 돌출된 북부집단군을 끈질기게 두들겼지만 이들 티거 슈퍼 에이스들과 제502중전차대대의 활약으로 모조리 격퇴했다. 1943년 초, 제502중전차대대는 라도가 호수의 레닌그라드 남쪽에 위치했다. 뵐터의 1중대는 24구경장 [[7,5cm KwK 37]] 단포신 속사포를 장착한 [[3호 전차]] N형과 56구경장 [[8,8cm KwK 36]] 전차포를 탑재한 막강한 티거 중전차로 무장했으며 일명 '소방대'(Feuerwehr)의 역할로서 독일 북부집단군에 대한 소련군의 공격을 격퇴할 준비가 되어 있었고, 뵐터가 큰 공을 세우는 데 일조한다. 1943년에 뵐터는 2주 동안 에르푸르트에 있는 가족에게 휴가를 갈 수 있었다. 동시에 제502중전차대대는 1943년 4월 초 프랑스 브르타뉴의 여러 부대에서 온 신병들로 개편되었다. 1943년 6월 25일 그는 행진 명령을 받고 [[동부전선]]으로 돌아갔고 다시 레닌그라드 전선으로 갔다. 1943년 7월, 며칠 간의 기차 여행 끝에 제502중전차대대가 Woiskowy에 도착했다. 거기에서 Salei로 진격했다. 1943년 7월 22일, 러시아군의 공세는 엄청난 포격과 공습으로 시작되었고, 뵐터는 격전을 치렀다. 1943년 9월 해당 전투는 끝났다. 이후에도 뵐터는 1944년까지 계속 연합군에 맞서 격전을 치르다 부상을 입게 되었고 그 뒤 종전까지 독일 본토에서 훈련소 교관으로 활동하게 된다. 뵐터가 부상을 입게 되어 독일 본토로 돌아와 훈련소 교관으로 활동하게 되는 1944년 부터의 제502중전차대대의 상황은 다음과 같이 돌아가고 있었다. 쿠를란트 반도 절단[* 현재의 라트비아 서북부지역. 바그라티온 작전으로 중부집단군을 분쇄한 붉은군대 주력이 그대로 북상을 시도했다. 이에 북부집단군은 황급히 철수를 시도했고 이 두 군세가 충돌한 지점이 바로 쿠를란트 지역이다. ]에서 1, 2중대는 탈출, 3중대는 남아서 510중전차대대와 함께 '''쿠를란트 집단군(Heeresgruppe Kurland)'''으로 재편성. 1, 2중대는 동프로이센에서 방어전을 펼친다. 1945년 1월 5일, 1중대의 모든 티거는 2중대에 넘기고 [[헤처]] 구축전차를 수령하여 '''제511중전차대대'''로 재편성되었다. 배편으로 소환된 3중대는 티거 II 8대를 수령한다.[* [[아카데미과학]]에서 발매한 최후기형 [[킹타이거]]가 이 물건이다.] 3중대는 두어 차례 작은 전투 후 와해된다. 2중대는 1945년 3월 말 GD사단의 마지막 티거 2대를 인계받고 가용 티거 총 10대를 확보하지만 4월 중 혈전 속에 6대를 손실한다. 마지막 남은 4대의 티거는 동프로이센 민간인 구출작전에 투입되어 헤라반도 방어중 모두 산화하고 마지막 한줌의 병력이 5월 9일 소련군에 항복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티거 I 중전차의 마지막도 이 부대와 함께 한 셈. 부대마크는 [[매머드]].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